작성자 Admin(admin) 시간 2021-10-30 20:2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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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C 전시 참여작가 하루.K맛있는 산수, 현대인의 이상향
아티스트

작가 하루.K

하루.K는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동양화과와 동대학원 미술학 석사를 졸업했다. 주로 전통산수화의 사생을 기록과 수집이라는 현대적 의미로 해석하여, 삶의 풍경을 관찰하고 이를 기록, 수집하는 행위를 통해 정신적 이상향을 담는 고전의 산수화가 아닌 정신과 물질을 함께 추구하는 현대인의 이상향을 나타내는 작업을 하고 있다. 하정웅 올해의 청년작가 초대전 「기묘한 식객 하루.K의 와신짬뽕」(광주시립하정웅미술관, 2019)을 비롯한 12회의 개인전과 「언-택트」(국립아시아문화전당, 2020), 「탄수화물 휘게」(대전시립창작센터, 2020), 「냠냠산수」(수원시립미술전시관, 2020) 등 국내외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하였고, 2013년 신세계미술상, 2015년 하정웅 청년작가상을 받았으며, 의재문화재단과 광주시립미술관의 창작스튜디오 레지던시 작가로 활동하였다.



현대인은 늘 피곤하다. 매일 바쁘게 밥벌이를 하며 생활을 꾸려 나가야 한다. 불투명한 미래를 생각하면 불안하고 초조하다. 반복되는 일상은 권태롭다. 그들은 막연히 탈출을 꿈꾼다. 어디로 가고 싶은 것일까? 주말이면 각박한 도시를 떠나는 차량 행렬이 길게 이어진다. 그 수많은 차들이 향하는 곳은 산과 바다, 숲과 강이 펼쳐진 자연이다. 그들은 그 평화로운 자연의 품에서 뭔가 맛있는 것을 함께 먹고 싶어한다. 대부분의 평범한 인간들이 추구하는 행복이란 그렇게 복잡하고 대단한 게 아닌 듯하다. 건강한 사람이라면 그저 정신적으로 평화롭고 물질적으로 넉넉하면 족한 것이다.
이와 같은 현대인의 원초적인 마음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작가가 있다. 하루.K라는 예명을 쓰는 그가 그린 그림들을 보면 흥미진진하다. 마치 숨은그림찾기처럼 자연 풍경 속에 여기저기 다양한 음식들이 등장하는가 하면, 갖가지 음식처럼 자연의 모습이 묘사되기도 한다. 게다가 크고 작은 사람과 사물 들이 소곤소곤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하다. 쉽게 상상하기 힘든 낯선 조합이다. 한마디로 초현실적이다. 그리고 그의 그림들은 전통적인 동양화의 내용과 형식을 활용하면서도 현대적인 느낌을 준다. 그림에 사용된 재료도 동양화와 서양화의 재료가 뒤섞여 있다. 여러 내용, 형식, 재료가 잘 버무려져 얼큰하게 맛있는 짬뽕 같은 미술이다. 그는 왜 이런 미술을 하게 되었을까?



이미지 설명
「맛있는 산수」 한지에 수묵 채색. 74x104cm, 2012 (남도향토음식박물관-화개장 전시작품)

유년시절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던 하루.K 작가는 예고 진학을 위해 다녔던 미술학원 원장 선생님의 영향으로 동양화를 배우게 되었고 대학에서도 동양화를 전공하였다. 그런데 동양화를 전공하면서 많은 의문을 품게 되었다. 왜 동양화에서는 그림을 그릴 때 지키고 따라야 할 법칙이 많은 것일까? 왜 동양화는 옛날 그림처럼 보일까? 왜 동양화는 젊은이들이 좋아하지 않을까? 이렇게 끝없이 이어지는 의문을 가지고 다양한 시도를 해오던 그에게 2012년에 한가지 흥미로운 제안이 들어왔다. 광주의 남도향토음식박물관에서 영호남 작가교류전을 개최하는데, 화개장터를 중심으로 역사, 문화적인 접근을 하는 작업을 해달라는 것이었다. 그렇게 전시 참여작가가 되어 화개장터를 답사하면서 풍경을 스케치하던 중 그에게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잘 차려진 밥상에 음식 대신 자연 풍경이 들어가면 재미있고 의미도 있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고루한 분위기의 동양화와 달리 이런 내용이라면 관객들이 쉽게 흥미를 느끼고 감상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그는 식탁 위에 여러 개의 접시들을 배치해 놓고 각각의 접시 안에 산수(山水) 이미지를 그려 넣었다. 「맛있는 산수」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의 독자적인 작품 세계가 열리는 순간이었다.



이미지 설명
「맛있는 산수」 한지에 수묵 채색, 160x130cm, 2013 (2013신세계미술제 수상작)

「맛있는 산수」 연작을 하면서 하루.K 작가는 다양한 변주를 시도했고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분명히 해 나갔다. 2012년의 첫 작품에서는 음식 대신 풍경을 그려 넣었는데, 그 후로 전통 산수화와 음식의 이미지를 결합시키는 작업을 하게 되었다. 전통 산수화는 옛 선비들이 추구했던 이상적인 자연을 보여주는 그림이다. 그들은 탈속적인 산수화를 완상하면서 언젠가 자연으로 돌아가 자연의 이치를 관조하며 학문에 정진하고 심신을 수양하길 원했다. 즉 전통 산수화에 등장하는 자연은 그들의 정신적인 이상향인 셈이었다. 이런 전통 산수화를 보면서 하루.K 작가는 현대인의 이상향은 무엇인지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그에게 현대인은 정신적인 만족과 물질적인 만족을 모두 추구하고, 그것들이 조화롭게 되기를 원하는 사람들로 보였다. 그래서 전통 산수화의 이미지를 정신적인 이상향으로 삼아 배경으로 배치하고, 누구나 좋아하는 먹음직스러운 음식들을 물질적인 풍요를 상징하는 이미지로 보고 화면 곳곳에 등장시켰다. 그리고 그렇게 창조된 새로운 이상향 안에서 현대인들이 놀고 쉬는 모습도 그려 넣었다. 이 작품에서 작가는 포도, 새우, 버섯 등 주로 자연에서 왔고 색감이 예쁜 음식들을 선택하여 산수와 잘 어울리도록 그리는 일에 특히 신경을 썼다. 전체적인 구성과 시각적인 효과에 중점을 두던 시기였다.



이미지 설명
「산수를 담다(보길도기행도)」 한지에 수묵 채색, 130x200cm, 2018 (신세계갤러리-보길도 전시작품)

현대인의 이상향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지 고민하며 작업했던 하루.K 작가는 그 시기부터 그림의 소재에 관해 여러 모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는 차츰 그림의 소재들이 작가의 관념보다는 경험에서 우러나와야 더 자연스럽겠다고 생각했다. 이런 생각을 작품으로 보여줄 기회가 찾아왔다. 2018년에 보길도를 주제로 열린 광주 신세계갤러리의 기획전이 그것이었다. 이 전시회를 위해 17명의 작가들이 고산 윤선도 관련 유적지를 비롯해 보길도의 역사, 문화, 자연 등을 두루 답사한 후 각자의 감성으로 다양한 작업을 선보였다. 보길도를 답사하는 동안 하루.K 작가는 그곳에서 마주친 여러 사물과 풍경들을 현장에서 스케치했다. 작업실로 돌아온 그는 스케치한 이미지들을 모아 편집하여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이렇게 구상한 이미지를 먼저 소품으로 그려본 다음 본격적으로 대형 화면에 옮겨 그렸다. 수정이 불가능한 화선지에 그림을 그려야 하기 때문에 최대한 실수를 줄이기 위해 이처럼 신중한 작업 과정을 거친다. 또 그리는 과정에서 먹과 동양화 물감을 비롯해 아크릴 과슈 같은 서양화 재료도 사용하여 다양한 표현을 하였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탄생한 「산수를 담다(보길도기행도)」를 보면 다분히 환상적이다. 보길도의 비파원에서 발견한 대나무 찬합에는 맛있는 음식처럼 보길도의 산과 물과 정자 등이 담겨 있고 비파 열매들이 달린 나뭇가지가 그 주변을 감싸고 있다. 그리고 찬합에서 밖으로 넘쳐 흐른 물은 또 하나의 작은 풍경을 이룬다. 이 풍경 안에서 사람들은 낚시나 물놀이 등을 하고 있다. 현실과 환상이 어우러진 이상향의 모습이다. 이 작품 이후로 하루.K 작가는 자신이 경험한 장소와 음식 들을 소재로 삼아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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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산수(와신짬뽕)」 한지에 수묵 채색, 131x162cm, 2019 (하정웅 청년작가 초대전-기묘한 식객 하루.K의 와신짬뽕 전시작품)

2019년에는 하루.K 작가에게 중요한 전시회가 열렸다. 광주시립미술관 분관 하정웅미술관의 청년작가 초대전으로 개인전을 열게 된 것이다. 「기묘한 식객 하루.K의 와신짬뽕」이라는 특이한 제목으로 열린 초대전에서 그는 평면부터 입체와 설치까지 그동안 해온 다양한 작업들을 펼쳐 보였다. 이 초대전 출품작들 중에서 작가 스스로 대표작이라고 꼽은 그림은 「맛있는 산수(와신짬뽕)」이었다. 이 그림에는 나무, 바위, 정자 등으로 둘러싸인 해물이 든 짬뽕 한 그릇이 놓여 있고, 화면 밖에서 누군가 젓가락으로 면을 집어 올리는 장면이 그려져 있다. 와신짬뽕에서 와신은 바뀔 와(譁), 나아갈 신(兟)으로 '바꿔 나간다'는 의미이다. 이는 그가 삶과 작업에서 지향하는 바다. 그리고 짬뽕은 작업의 정체성을 은유하는 단어로 짬뽕처럼 이것저것 혼합되어 있는 그의 작업 방식을 가리킨다. 그래서 「맛있는 산수(와신짬뽕)」은 그가 추구하는 작품세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할 만하다. 재미있는 것은 이 초대전에서 작은 해프닝이 벌어졌다는 사실이다. 「맛있는 산수(와신짬뽕)」을 자세히 보면 젓가락 끝부분 위에 작은 사람이 서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 작은 사람은 만국기 같은 것을 손으로 늘어뜨리고 있는데, 이는 초대전을 자축한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여기에 그치지 않고 하루.K 작가는 전시장에 만국기를 설치해서 중국집 개업식 같은 분위기를 연출했다. 먹음직스러운 짬뽕 그림과 만국기 때문이었을까? 어떤 관람객은 도슨트에게 실제로 짬뽕집이 어디 있는지 물어보았다고 한다.



이미지 설명
「산수를 담다(H씨의 도시락)」 한지에 수묵 채색, 130x160cm, 2020 (2020 ACC 지역-아시아작가전 [언-택트] 전시작품)

지난해엔 코로나19가 발생하자 사회적으로 많이 혼란스러워졌다. 그래서 여러 문화예술행사들이 갑자기 취소되거나 연기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시대의 이슈를 주제로 삼은 의미 있는 전시회들이 곳곳에서 열렸는데, ACC의 [언-택트]전도 그중 하나였다. 바이러스 전염을 피하기 위해 가능하면 대면하지 않고 서로 소통하려는 사회 분위기가 반영된 제목이었다. 이 전시회에는 광주, 베이징, 상하이, 타이베이, 도쿄 출신의 작가 7명이 초대되었다. 전시 섭외가 들어오던 시기에 마침 하루.K 작가는 도시락을 주요 소재로 삼아 작업을 하고 있었다. 산으로 들로 현장 사생을 다니던 그는 그곳에서 마주친 사람들이 자연을 경외의 대상이 아닌 그저 쉽게 소비하는 일회용품처럼 대한다고 느꼈다. 그래서 일회용 도시락 용기에 음식처럼 담긴 자연의 모습을 그리게 되었다. 게다가 도시락은 팬데믹 때문에 따로따로 식사를 해야 하는 상황과 연관되는 이미지이기도 했다. 그런 이유로 [언-택트] 전시회에 「산수를 담다(H씨의 도시락)」을 출품하였다. 그는 이 그림을 그리면서 등장인물 H씨를 떠올렸다. 그림 속의 H씨는 평범한 직장인이자 가장인데, 팬데믹 상황에서 가족과 함께 갈 곳이 마땅치 않자 도시락을 들고 한적한 숲과 계곡이 있는 곳으로 간다. 그곳에서 텐트를 치고, 연을 날리고, 물놀이 등을 하며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 시대의 풍속도인 셈이다. 이 그림에서 흥미로운 요소는 또 있다. 화면 우측 아래에는 도시락 포장용 띠지가 사선으로 놓여 있는데, 거기에 전통 동양화가 그려져 있다. 이 그림은 중국 북송의 화가 곽희(郭熙,1023~1085년)의 「과석평원도(窠石平遠圖)」이다. 그런데 이 띠지가 흘러내린 곳에는 「과석평원도」의 풍경과 비슷한 나무와 바위 등이 젓가락과 함께 그려져 있다. 이러한 대조는 하루.K 작가의 작업이 고전에서 출발하였으나 현대적으로 재해석된 것임을 알려주는 장치이다.

이처럼 하루.K 작가는 전통 동양화를 연구하며 이를 동시대적인 시선과 감각으로 새롭게 재창조하는 데 관심이 많다. 그래서 그는 전통 동양화의 화법과 재료를 인식하면서도 그것을 벗어나 자유로운 형식 실험을 계속하고 있으며, 한편으론 사회의 변화와 사람들의 삶에도 언제나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와 같은 태도와 노력이 좋은 작가로 남을 수 있는 방법이라고 그는 생각한다. 여전히 자신에게 부여된 사회적 역할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그는 예명의 의미처럼 행운을 기대하기보다 하루하루 열심히 살고 있다.




  • 글. 백종옥 icezug@hanmail.net
    사진. 하루.K dudghs21@hanmail.net

    2021.09